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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22 2010.02.22-주님을 왕으로 맞아들인다는 것
- 2010.02.20 2010.02.20- 주님을 앙망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어미의 몸에서 분리되는 순간 작은 점을 하나 찍는다. 그 점은 곧 구르기 시작하고 의미라는 것을 찾고자 방향성을 갖게 된다. 점이 굴러간 곳에는 흔적처럼 실선이 그려지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굴러다니다가 어디 시점에 다다르면 눈 녹듯 스르르 사라진다. 죽음이다. 그렇게 점은 찍히고 구르며 마침내 사라진다. 이렇게 점이 구른 흔적을 우리는 인생이라 부른다.
‘태어나다’와 ‘죽는다’ 사이에는 ‘삶’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삶이라는 것은 이 땅에 얼마 간 머문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가 머무는 이 땅은 누구나 마음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푹신푹신하고 평평하기만 한 곳이 아니다. 이 땅은 거칠고 경사진 곳 이다. 거칠기 때문에 상처 입고, 비탈지기 때문에 올라가지 않으면 굴러 떨어지는 그런 곳이다.
푸구이의 점은 비탈길의 꼭대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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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소망이란 비전을 말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비전이 생기지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비전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살아 있지만 내일에 대한 아무런 소망과 비전이 없고 그저 죽고 싶습니까? 성령을 사모하시길 바람니다. 성령은 죽은지 아무리
오래된 뼈라도 능히 살리고 소망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늘 넘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여 두려워하라, 평범한 죽음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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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이 매일같이 놀러온다.
시끄럽다. 귀찮다.
이제 교회 건물이 좁다고 생각 된다.
콱 그냥 쫓아 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
아이들을 쫓는게 옳은가?
아이들이 교제할 수 있는 교육관을 달라고 기도하는게 옳은가?
옳고 그른것을 떠나서 어떤 것이 더 생산적이고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
그래,
너도, 오고, 너도 와라,
집에서 틀어박혀서 컴퓨터랑 놀지 말고
교회로 오려무나.
와서 창문도 두어장 깨고, 울고 웃고 떠들어라.
너네도 좁다고 느낄 그 때,
잠깐만 같이 무릎꿇고 기도하자꾸나.
하나님 교회가 좁아요.
예배하고 교제할 수 있는 교육관 하나만 주세요 하고 말이다.
선생님 먼저 무릎꿇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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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두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겉 옷을 벗어
예수님이 지나가실 길에 깔아놓고 있다. 그렇다. 이제야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제서야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몇 일 후, 예수님을 맞이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찌된 일일까? 그 몇 일 사이에 모두 어디라도 간 것일까? 그 곳은 분명 얼마 전 예수님이 환영을 받으며 입성했던 예루살렘이였는데, 예수님은 결국 그 곳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다.
지금 혹시 주님이 주신 감격과 은혜에 감사하여 두 손에 '예수님 만세'라고 적힌 깃발을 정렬적으로 흔들고 있는가?
높이 든 손이 자랑스럽고,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이 밀려오는가? 이천 년 전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같았다.
아마 그들도 온 힘을 다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을 것이고 눈물을 흘리며 예수를 맞이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더 크게 찬양했고, 더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바로 몇 일 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오늘 무슨 깃발을 흔들고 있는가? 예수님 만세인가?
좋다. 그렇다면 당신의 품 속에 감춰놓은 또 다른 깃발은 또 언제 흔들 생각인가?
이를 테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와 같은 깃발 말이다.
세상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흔드려고 감춰놓았는가?
아니면 회사? 학교? 그 밖에 어떤 필요 적절한 자리에서?
예수님은 왕 노릇을 하시려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내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서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내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셨다.
우리가 평생 들고 흔들어야 할 깃발, 예수 그리스도.
내 삶을 바친다고, 나를 받아달라고 그럴듯한 말들을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이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품 속에 몰래 감춰 놓은 '세상'이라고 적혀 있는 그 깃발.
이제 그 깃발을 꺼내서 태워버려야 한다.
내 손에 흔들 깃발이 오직 한가지, '예수' 밖에 없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예수를 나의 왕으로 맞아들였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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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 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사야40장28~31절
주님,
여기 무능한 자가 한 명 있습니다.
저는 무능할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무지한 자입니다.
앙망하다의 뜻을 찾아보니 '기다리다, 찾다, 기대를 가지고 소망하다' 이더라구요.
그렇다면 제가
오직 여호와를 기다리고,
오직 여호와를 찾고,
오직 여호와를 기대하고,
오직 여호와를 소망하면,
새 힘을 얻는 건가요?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저에게는 제 나름대로 기다리는 것과 찾는 것, 기대하는 것 그리고 소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주로 평범한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기대하고 찾고 소망합니다.
대표적으로 돈, 명예, 권력같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염치가 있어 주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돈주세요, 명예주세요, 권력주세요 라고 기도하지 않았지만
제가 주님께 바란다고, 특별히 제 비젼이라고 놓고 기도했던 것들의 이면을 찬찬히 살펴보면
거기엔 저의 인간적인 욕심과 남에게 잘보이고자 하는 마음,
나를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덕지 덕지 붙어있었다는 것을 차마 부인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비젼이 뭐냐고 물으면,
한 때는 '하나님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 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와우, 전 제 입으로 그런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그럴듯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전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검은 양복의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님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물론 그 회장님은 제가 되어야 했죠.
검은차, 그럴듯한 사무실,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에 가득 찬 눈 빛을 한 몸에 받는 그런 회장님 말입니다.
수익금의 얼마는 '믿음의 기업 XXX'와 같은 케치 프레이즈따위를 걸고 사회 복지 단체로 보내고,
목에 힘을 주고, 힘든 교회나 선교사님을 만나면 '여기 돈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쿨하고 폼나게 도와줄 수 있는 그런 회장님이 되고 싶었단 말입니다.
내가 바라고 찾았던 것은 이런것들 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비젼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 이름 걸고, 나 잘 먹고 잘 사는 것.
제가 과연 여호와를 앙망했던 것일까요?
네, 아닙니다.
그러니 제 삶에 주님이 주시는 힘이 없었고, 주님이 주시는 힘이 없으니
결국은 내가 혼자 힘쓰고 애써서 뭔가 해보려고 아등바등 했었던 것 같습니다.
TV CM에서 연신 떠들었던 '생각대로..'와 '쑈를 해라..'는 다름아닌 바로 제 삶이였습니다.
주님, 이제 주님을 앙망하는 자 되기 원합니다.
비젼을 '뭐 먹고 살 것인가?'로 잘못 이해하고 살아왔던 지난 날을 회개합니다.
저번부터 연신 말씀드리지만, 제가 교사 아닙니까...?
주님께서 저를 교사로 세워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만 잘못되면 상관 없지만, 저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주일마다 저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한 명도 아니도 두 명도 아니고 자그마치 여덟 명이나 됩니다.
이 아이들을 봐서라도 저에게 진리를, 하나님의 뜻을, 그리스도의 길을 깨닫게 해주세요.
그리고 가르치게 해 주세요.
주님, 이제는 정말 주님만 소망하는 자 되길 원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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