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31. 22:28
비가 내린다. 우산을 들고 있어, 시선 역시 아래로 내려온다.
양 발은 번갈아 가며 바지 자락으로 빗물을 퍼나르고 젖은 바짓단은
정강이에 달라붙어 습습한 기운에 소름이 돋는다.

비가 오면 '평소 같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평소 주위를 두리번 거리거나 멍하니 먼산을 보며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걸어갔다면,
비가 오는 날은 조금 다르다. 

시야가 우산 아래 갖힌다. 시야의 초점이 당겨지면 집중하게 되고 오감이 일을하기 시작한다.
우산에 하늘이 가려지고 뽀얗게 입김이 나오는 것을 보며 내가 호흡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호흡하고 있다.
들이 마시고, 내쉬고,
소리 없이 이루어지던 것이
하얗게 눈으로 보이면 귀로 들리고 온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콧구멍은 아래서 위로 뚫려있는터라 내리는 빗방울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공기만을 흡입할 수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만약 콧구멍이 굴뚝과 같이 위로 뚫려 있었다면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이 걸었다가는 질식해서 죽을 수도 있는 그런 날이 될 수도 있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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