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 21:34

장롱 위 먼지 쌓인 종이 상자,

그 상자 안에는 저의 초심이 들어있습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것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어제, 장롱 위 물건을 꺼낼 일이 있어, 

꽁지 발을 딧고 장롱 위를 올려보았습니다.

희뿌엿게 쌓인 먼지가 코를 간질거리는데,

저기 깊숙히 왠 상자가 하나 보였습니다.

 

조심스럽게 꺼내서 뚜껑을 엽니다.

 

'힉!'

 

저는 기겁을 했습니다.

웬걸,

시끄무레한 털레기가 한무더기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놀란 마음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는데,

어머니께서는 옆에 오셔서

놀란 제 얼굴과 뚜껑 열린 상자를 번갈아 보시며 웃으십니다.

 

어머니께 이게 도대체 뭐냐고 여쭤보았더니,

너무도 태연하게

 

'니 털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내...털? 무슨 털...?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그제서야 입을 여시는 어머니,

 

"너 재수시켜달라고 울며 불며 무릎 꿇고 빌 때

 그 때 너가 깎았던 머리털이랑 눈썹이야"

 

하지만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분명히 그 때 내 손으로 다 버렸는데..

 

어머니는 제가 버린 털들을 다시 다 모아서 담아두셨다고 합니다.

행여나 제가 딴 생각 하면 보여주시려고,

보여주시면서 초심을 되새기라고 말씀하시려고 그러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도 참..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손 끝으로 상자 속 털무더기를 들춰내니,

그 때 기억이 조심스레 만져집니다.

 

 

 

2004년, 

춥게만 느껴졌던 2월 초 어느 수요일이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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