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1. 21:38

내 사랑하는 아들 민찬아..

내가 더 좋은 것으로 채우려고 하니 준비하여라...

 

지금 생각 해 보면 이런 내용의 메세지였던거 같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 해 보면이구요..

사실 그 때 제 귀에 실제로 들렸던 말은 이렇습니다.

 

"야 이 XXX, XXX야

 누가 니 맘대로 이거 가져다가 쓰라고 했냐?

 어린놈의 XX가 남들 공부할 때 뭐 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어?"

  

 

전 너무 당황스럽고 기분이 상해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 예비 대학생인데요

 입학 전까지 용돈 좀 벌고있는 거에요..."

 

분명 불합격인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죠.

 

전 주섬 주섬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갈 채비를 했습니다.

교회 안수집사님이셨던 작업반장님 옆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한 시간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오니 수요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희 집은 교회 사택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남이야 예배를 드리건 말건

제 방으로 들어가서 쉴 생각부터 했을텐데,

그 날은 예배당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가

왜이렇게 제 마음을 울리는지..

 

'끼이익-'

 

낡은 스텐레스 문을 열고 예배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권사님 몇 분, 저의 어머니를 포함해서 집사님 몇 분이 띄엄 띄엄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계셨습니다.

조용히 어머니 옆자리로 가서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는데,

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혹시나 남이 볼까봐 얼른 닦아내고, 

이번엔 찬송가를 부르는데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닭 똥같은.. 아니 달걀만한 눈물이였습니다.

 

하지만, 억울해서, 서러워서 흐르는 눈물이 아니였습니다.

순간 분명히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민찬아 그래도 난 너를 가장 사랑한다.'

 

그 때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마음이란..

그 날 수요예배는 저에게 어느 부흥회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저와 하나님과 일대일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하도 울어대니깐 살짝 민망하셨던지

손수건을 주셨습니다.

하긴, 앉아서 일어날 때까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으니까요.

 

오늘 받았던 모든 설움이 다 씻겨져 가고,

마음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쁨과 자신감이 솓아났습니다.

 

사실 예배당 문을 열기 전 까지,

제 마음 속에는 원망과 불평 투성이였습니다.

 

 하나님, 이러실 수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 아들이라면서요.

 그런데 이런 상욕이나 들어야 되고..

 하나님 참도 영광 받으시겠어요?

 네? '

 

그날 예배는 저에게 화장실이였습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죠..

시원스럽게.

 

그리고 공부하고 싶다는 도전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분명 나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길이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부족했나 봅니다.

하나님은 허락하셨는데,

우리 어머니는 허락해주시지 않을것 같았거든요;;

어머니의 마음을 삭발식으로 움직여 보자는 마음에서..

그 새 인간적인 제 생각이 들어갔던 거죠,

 

이 때가 바로 제가 처음에 말씀 드렸던,

 

2004년, 

춥게만 느껴졌던 2월 초 어느 수요 저녁입니다.

 

예배가 끝난 후 어머니는 방에서 부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하나 조립하면 2원을 받는 가위 조립 부업이였는데요..

그 일을 하고 나면 손이랑 얼굴이 온 통 새까매지곤 했습니다.

 

'똑 똑'

 

생전 하지도 않던 노크를 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머니 공부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공부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공부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공부하고 싶습니다.'

.

.

밖에서 100번도 더 연습했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에라 모르겠다 하며 쓰고 있던 모자를 확 벗어버렸습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을 쓰자는 것이였죠.

 

제 얼굴을 보자 어머니께서는 기겁을 하시면서

눈이 휘둥그래지셨습니다.

 

너 왜그러니?

 

저는 다시 울면서

 

밖에서 100번 연습했던 그 말,

 

어머니 공부하고 싶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래 해봐,

 

하고 허락하셨습니다.

뭐, 이유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한방에 '해봐'

 

좋았지만 한편으론 억울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쉽게 허락하실 수 있는거야?

우리집 가정 형편도 어려운데 생각 좀 해보자던가 잘 할수 있겠냐? 이런식으로 말해야 정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나 봅니다.

 

내 머리, 내 눈썹..................

 

장롱 위의 상자,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4년전 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상자입니다.

 

머리가 밀려나가던 순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하지만

'하나님한테 복 받으려면 내가 이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하는

인간적인 제 생각이 들어갔던 순간이기도 합니다.

 

털무더기 속에 있는 초심,

 

하나님의 대한 사랑의 초심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값 없이 주시는 은혜를 몰랐기에

그래서 교만했던 초심이기도 하죠..

 

가끔씩 들여다 봐야겠습니다.

변함 없는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

순간 순간 솓아나는 제 인간적인 생각을 죽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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