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6. 21:39

학교 도서관으로 향하는 아침,

여느 때처럼 책을 읽으며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 이게 왠걸?

빈 자리가 있었습니다.

두 자리나 비어 있는데, 아무도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편하게 앉아서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빈자리로 가서 앉으려는 순간,

 

'아뿔싸...'

 

사람들이 왜 앉지 않고 자리를 비워두었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양 옆으로 비어있는 자리 가운데에는 노숙자처럼 보이시는 분이

앉아서 졸고 계셨습니다.

머리는 산발에, 오랫동안 씻지 않은것 처럼 보이는 얼굴, 

맨발에 슬리퍼를 신으셨는데,

발가락 사이 사이에는 시꺼맣게 때가 엉겨붙어서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정도였습니다.

 

이미 앉으려는 모션을 취한 후였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도 없고...

전 아저씨 옆에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한 척 하며..

 

얼마 지나자 지하철 좌석 아래서 훈훈한 난방 열기가 올라왔고,

난방 열기 속에는 그 분의 냄새가 함께 섞여있었습니다.

이루 말 할수 없을 정도로 역겨운..

 

책을 손에 들고 있지만 전혀 집중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속으로 정거장 수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 종로 5가니까 동대문, 동묘앞, 신설동, 제기동, 청량리...

 그래, 다섯 정거장만 심호흡하면서 참으면 되.

군대에선 화생방 훈련도 했는데 이것 하나 못참겠어?'

 

조금 지나자 그 분은 제 어깨에 몸을 기대서 졸기 시작하셨고

사람들은 저를 불쌍하다는듯이 쳐다보았습니다.

 

지하철이 흔들거릴 때마다 퍼지는 냄새.. 

비위가 약한 저는,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구역질을

애써 참아야 했습니다. 

참다 못한 구역질과 함께 눈물이 한방울 찔끔 나왔는데,

 

순간,

역겨운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머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한다면서

손에 신앙서적을 들고 있는데,

막상 내 가슴은 옆에 앉아 있는 걸인 한사람 포용하고 용납 할 

준비가 안되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가 놀랍다고 백날 고백하면 무얼하나..

내가 정말 그 은혜를 놀라워하는 것인가..?

 

'아, 내 썩어 빠진 마음이...'

 

무언가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있기를 몇 분..

 

아저씨의 온기가 제 어깨에 느껴졌습니다.

많이 피곤하셨나봅니다..

아까는 더럽게만 보였던 발이, 앙상하고 불쌍해 보입니다.

이 겨울에 슬리퍼를 신고 계시다니..

지하철은 청량리에 도착했고

저는 잠든 그 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옮겨 놓고

지하철에서 내렸습니다.

저를 내려두고 천천히 출발하는 지하철을 봅니다.

그 분은 기댈 곳이 없어 몸을 가누지 못하시네요..

 

  그리고 또 다시 비어있는 그 자리..

 

가만히 서있는 저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민찬아, 네가 내 옆에 앉아줄 수 없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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