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3. 01:06

순전한기독교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지은이 C. S. 루이스 (홍성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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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비독교인이나 혹은 반기독교인과 대화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대상은 어쩌면 친구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지인 중 한명이 될 수도 있다.  나 역시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군 입대 후 훈련소에서 만난 동기와의 대화가 바로 그것이였다. 


우리의 대화는 하루 일과를 끝나는 동시에 시작되었다. 우리는 신이 있느냐 없느냐부터 현재 기독교의 문제점까지 피곤함 때문에 감기는 눈꺼풀을 지탱하며 오랜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6주라는 기간동안 대화를 통해서 얻은 것이라고는 상대방에 대한 비기독교적인 신념의 재확인과 그로인안 이질감이 전부였다. 다행이 아직까지 서로 안부를 물으며 잘 지내고 있지만, 그 뒤로 그 친구와의 대화에서 종교적인 대화는 꺼내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 둘 다 더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후로 나는 더이상 불신자와 종교적인 토론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 이유는 분명 그 토론은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을 긋게 될 것이고,  결국 그 사이에는 의미없는 논쟁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얼마전까지 나는 감히 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인 즉슨, 기독교는 분명 믿음의 종교인데 신학이라는 학문이 믿음의 측면에서 어떤역할을 하는가라는 물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익혀서 좀 더 정확한 주석을 달고, 고대 근동의 역사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조물주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더 나아가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단순히 성자라고 주장하는 불신자들에게 과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갖게 해 줄 수 있는가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이런 나에게 ‘그건 니 생각이고!’ 라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순전한 기독교’의 저자인 C.S.Lewis 이다.  나는 이 책는 동안 그저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C.S.Lewis는 무신론자부터 기독교인까지 아우르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사상과 하나님의 속성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덕목에 대해 누구나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변증법적 글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써내려갔다. 


 C.S.Lewis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성도덕과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에 대한 정의까지 신학에 대한 올바른 개념이 서있지 않았던 나에게 그야말로 이런것이 바로 신학이구나 하는 깨닫음을 주었다. 특히 책의 내용 중 신학에 대한 나의 편협한 생각을 정확히 꼬집는 예화도 있었는데,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C.S.Lewis가 공군에 신학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고한다. 그런데 강의를 듣던 중 한 나이 지긋한 장교가 일어서서 자신은 하나님을 직접 체험한 적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직접 체험한 나에게 시시하고 현학적이며 실제적이지 못한 신학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 장교는 꼭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였던것 같다. 그 후  C.S.Lewis가 이야기 했다. 


당신이 만난 하나님 해변에서 본 진짜 대서양이라면 신학은  대서양 지도와 같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지도가 색칠한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지도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진짜 대서양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경험은 바다를 고작 한 번 흘깃 본 것이 전부지만, 지도는 서로 다른 경험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어딘가 가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지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신학은 지도와 같습니다.  이 지도는 하나님을 만났던 수백 명의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난 하나님을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론 기뻤던 것이 사실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감히 신학에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사실 적지 않은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읽었던 ‘고통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구석 구석 C.S.Lewis의 특유의 친철한 비유와 독자에 대한 배려가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깊은 사상과 폭넓은 지식과 더불의 그의 겸손한 필체 또한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의 글을 통해서 기독교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하나님의 속성을 알 수 있고, C.S.Lewis의 의 겸손한 성품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신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충분히 다시 고쳐 생각해 볼만한 이유가 생긴것 같다. 끝으로 깊은밤 평행선을 그으며 그토록 다투었던 내 친구에게 이 책을 권하며 글을 맺고 싶다. 

2009. 7. 2. 01:03

고통의문제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일반 > 기독교수필/시
지은이 C. S. 루이스 (홍성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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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하나님은 왜 고통이라는 것을 인간에게 허락하시는 것일까? C.S.Lewis는 고통과 인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게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미노제’ 라고 불리는 두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누미노제란 사람에게 피조물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무서운 신비나 외경심을 뜻하는 것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느꼈던 일종의 고통의 한 종류입니다. C.S.Lewis는 그렇다면 이 ‘누미노제’는 과연 누구로부터 오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깐 원시시대의 사람들은 해가 진 후 찾아오는 어둠에 대한 불안감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 혹은 죽은 자들에게서 느끼는 두려움으로부터 일종의 고통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를 괴롭히는 고통은 무엇인가 생각하며 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의 배려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독자가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책 곳 곳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제가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제가 이해한 하나님과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서두에 선하신 하나님께서 왜 인간에게 고통을 허락 하시는가라는 물음을 소개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통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터 온다입니다. 제가 제 나름대로 곡해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지만, 이것이 제가 이 책을 읽으며 내린 결론입니다.  C.S.Lewis는 하나님은 악인이 모든것을 소유한채로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는 것을 그냥 두고보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악인이 소유한 모든 것은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아닌 풍요는 내겐 빈곤이다.‘라고 말한 한 크리스천의 신앙고백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빈곤이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는 풍요가 진정한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오늘 나에게 허락된 이 고통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 생각하고, 고통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구할줄 아는 성숙한 크리스천의 길을 걸어야겠습니다. 

2004. 1. 13. 01:09

7막7장그리고그후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 자전적에세이
지은이 홍정욱 (위즈덤하우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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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는 태어날 때 부터 헤엄을 친다. 

헤엄을 멈추는 순간 참치는 질식해서 죽는다.

그래서 참치에게는 넓은 바다 그리고 멀고 먼 세계의 바다가 있어야 한다.

반면에 가자미는 정반대다. 

헤엄을 친다기 보다는 떠다닌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넒은 바다도 가자미에게는 웅덩이와 다를것이 없다.

가자미인가? 참치인가?

이제는 시속 100km로 오대양을 누비는 참치의 어군처럼 

가장 푸른 지성의 아가미를 가지고

은빛 비늘을 세우고 헤엄치자. 세계로.

-추천사에서


홍정욱씨의 독기 넘치는 유학 생활을 보면 느끼는 것이 많다.

너무도 평범한 내 삶을 보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져 든다.

하지만 자괴감에 빠질 정도의 충격은 아니다. 신선하다. 다시 달려갈 힘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책 내용이 아니라 추천사였다.

누가 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책을 손에 들고 잠깐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참치인가? 가자미인가?

무기력 하다고 느껴질 때,  도전 받기 원할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