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0. 21:40

이른 아침 학교로 가는 길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곤 합니다.

학생, 회사원,아줌마, 아저씨 할 것 없이 사람들로 가득가득 차는데,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면, 사람들은 앞다투어 내리고 종종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종종걸음으로 가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한명 먼저 뛰기 시작하면 

눈치를 보고있던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제까지 저도 그 사람들 틈에 껴서 같이 뛰곤 했습니다.

웬지 나혼자 걸으면,  그래서 지금 온 열차를 놓치기라도 하면 뭔가 큰 손해를 볼 것 같아서 말이죠..

 

오늘도, 저도 모르게 뛰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순간 저 자신한테 물었죠.

 

'민찬아 너 왜 뛰니?'

 

순간 대답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답은 '나도 몰라'였습니다.

내가 왜 뛰었지?

난 들어야 할 수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출근 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만원인 지하철 안에서 이리 저리 치이며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나로 뛰게하는가..?

지하철을 타는 내내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뛸 이유가 없었죠.

 

지하철 문이 열리고, 좁은 층계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올라가는 모양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사람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기둥에 기대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산책하듯이 걸어보았습니다. 아주 여유롭게..

그 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여유롭게 걸을 때 주님께서 말을 거신다는 사실입니다.

 

어제만 해도 이 길을 지날 때,

제 머리 속에는 

 

'1호선으로 환승, 1호선으로 환승'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주님과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참, 진작 너랑 말하고 싶었는데..' 라는 주님의 마음이 전해져 옵니다.

 

이제까지 이유 없는 분주함으로 주님을 잊었던 저를 반성합니다.

제 삶에 뿌리 내린 조급증, 빨리빨리, 인스턴트스러운 것들..

주께서 고치라고 하십니다.

 

빨리 고쳐야죠.

 

 

 

 

 

그런데 또 '빨리'랍니다.

 

주님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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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26. 21:39

학교 도서관으로 향하는 아침,

여느 때처럼 책을 읽으며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 이게 왠걸?

빈 자리가 있었습니다.

두 자리나 비어 있는데, 아무도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편하게 앉아서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빈자리로 가서 앉으려는 순간,

 

'아뿔싸...'

 

사람들이 왜 앉지 않고 자리를 비워두었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양 옆으로 비어있는 자리 가운데에는 노숙자처럼 보이시는 분이

앉아서 졸고 계셨습니다.

머리는 산발에, 오랫동안 씻지 않은것 처럼 보이는 얼굴, 

맨발에 슬리퍼를 신으셨는데,

발가락 사이 사이에는 시꺼맣게 때가 엉겨붙어서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정도였습니다.

 

이미 앉으려는 모션을 취한 후였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도 없고...

전 아저씨 옆에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한 척 하며..

 

얼마 지나자 지하철 좌석 아래서 훈훈한 난방 열기가 올라왔고,

난방 열기 속에는 그 분의 냄새가 함께 섞여있었습니다.

이루 말 할수 없을 정도로 역겨운..

 

책을 손에 들고 있지만 전혀 집중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속으로 정거장 수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 종로 5가니까 동대문, 동묘앞, 신설동, 제기동, 청량리...

 그래, 다섯 정거장만 심호흡하면서 참으면 되.

군대에선 화생방 훈련도 했는데 이것 하나 못참겠어?'

 

조금 지나자 그 분은 제 어깨에 몸을 기대서 졸기 시작하셨고

사람들은 저를 불쌍하다는듯이 쳐다보았습니다.

 

지하철이 흔들거릴 때마다 퍼지는 냄새.. 

비위가 약한 저는,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구역질을

애써 참아야 했습니다. 

참다 못한 구역질과 함께 눈물이 한방울 찔끔 나왔는데,

 

순간,

역겨운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머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한다면서

손에 신앙서적을 들고 있는데,

막상 내 가슴은 옆에 앉아 있는 걸인 한사람 포용하고 용납 할 

준비가 안되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가 놀랍다고 백날 고백하면 무얼하나..

내가 정말 그 은혜를 놀라워하는 것인가..?

 

'아, 내 썩어 빠진 마음이...'

 

무언가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있기를 몇 분..

 

아저씨의 온기가 제 어깨에 느껴졌습니다.

많이 피곤하셨나봅니다..

아까는 더럽게만 보였던 발이, 앙상하고 불쌍해 보입니다.

이 겨울에 슬리퍼를 신고 계시다니..

지하철은 청량리에 도착했고

저는 잠든 그 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옮겨 놓고

지하철에서 내렸습니다.

저를 내려두고 천천히 출발하는 지하철을 봅니다.

그 분은 기댈 곳이 없어 몸을 가누지 못하시네요..

 

  그리고 또 다시 비어있는 그 자리..

 

가만히 서있는 저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민찬아, 네가 내 옆에 앉아줄 수 없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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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21. 21:38

내 사랑하는 아들 민찬아..

내가 더 좋은 것으로 채우려고 하니 준비하여라...

 

지금 생각 해 보면 이런 내용의 메세지였던거 같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 해 보면이구요..

사실 그 때 제 귀에 실제로 들렸던 말은 이렇습니다.

 

"야 이 XXX, XXX야

 누가 니 맘대로 이거 가져다가 쓰라고 했냐?

 어린놈의 XX가 남들 공부할 때 뭐 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어?"

  

 

전 너무 당황스럽고 기분이 상해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 예비 대학생인데요

 입학 전까지 용돈 좀 벌고있는 거에요..."

 

분명 불합격인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죠.

 

전 주섬 주섬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갈 채비를 했습니다.

교회 안수집사님이셨던 작업반장님 옆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한 시간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오니 수요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희 집은 교회 사택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남이야 예배를 드리건 말건

제 방으로 들어가서 쉴 생각부터 했을텐데,

그 날은 예배당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가

왜이렇게 제 마음을 울리는지..

 

'끼이익-'

 

낡은 스텐레스 문을 열고 예배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권사님 몇 분, 저의 어머니를 포함해서 집사님 몇 분이 띄엄 띄엄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계셨습니다.

조용히 어머니 옆자리로 가서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는데,

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혹시나 남이 볼까봐 얼른 닦아내고, 

이번엔 찬송가를 부르는데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닭 똥같은.. 아니 달걀만한 눈물이였습니다.

 

하지만, 억울해서, 서러워서 흐르는 눈물이 아니였습니다.

순간 분명히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민찬아 그래도 난 너를 가장 사랑한다.'

 

그 때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마음이란..

그 날 수요예배는 저에게 어느 부흥회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저와 하나님과 일대일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하도 울어대니깐 살짝 민망하셨던지

손수건을 주셨습니다.

하긴, 앉아서 일어날 때까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으니까요.

 

오늘 받았던 모든 설움이 다 씻겨져 가고,

마음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쁨과 자신감이 솓아났습니다.

 

사실 예배당 문을 열기 전 까지,

제 마음 속에는 원망과 불평 투성이였습니다.

 

 하나님, 이러실 수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 아들이라면서요.

 그런데 이런 상욕이나 들어야 되고..

 하나님 참도 영광 받으시겠어요?

 네? '

 

그날 예배는 저에게 화장실이였습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죠..

시원스럽게.

 

그리고 공부하고 싶다는 도전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분명 나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길이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부족했나 봅니다.

하나님은 허락하셨는데,

우리 어머니는 허락해주시지 않을것 같았거든요;;

어머니의 마음을 삭발식으로 움직여 보자는 마음에서..

그 새 인간적인 제 생각이 들어갔던 거죠,

 

이 때가 바로 제가 처음에 말씀 드렸던,

 

2004년, 

춥게만 느껴졌던 2월 초 어느 수요 저녁입니다.

 

예배가 끝난 후 어머니는 방에서 부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하나 조립하면 2원을 받는 가위 조립 부업이였는데요..

그 일을 하고 나면 손이랑 얼굴이 온 통 새까매지곤 했습니다.

 

'똑 똑'

 

생전 하지도 않던 노크를 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머니 공부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공부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공부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공부하고 싶습니다.'

.

.

밖에서 100번도 더 연습했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에라 모르겠다 하며 쓰고 있던 모자를 확 벗어버렸습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을 쓰자는 것이였죠.

 

제 얼굴을 보자 어머니께서는 기겁을 하시면서

눈이 휘둥그래지셨습니다.

 

너 왜그러니?

 

저는 다시 울면서

 

밖에서 100번 연습했던 그 말,

 

어머니 공부하고 싶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래 해봐,

 

하고 허락하셨습니다.

뭐, 이유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한방에 '해봐'

 

좋았지만 한편으론 억울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쉽게 허락하실 수 있는거야?

우리집 가정 형편도 어려운데 생각 좀 해보자던가 잘 할수 있겠냐? 이런식으로 말해야 정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나 봅니다.

 

내 머리, 내 눈썹..................

 

장롱 위의 상자,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4년전 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상자입니다.

 

머리가 밀려나가던 순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하지만

'하나님한테 복 받으려면 내가 이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하는

인간적인 제 생각이 들어갔던 순간이기도 합니다.

 

털무더기 속에 있는 초심,

 

하나님의 대한 사랑의 초심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값 없이 주시는 은혜를 몰랐기에

그래서 교만했던 초심이기도 하죠..

 

가끔씩 들여다 봐야겠습니다.

변함 없는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

순간 순간 솓아나는 제 인간적인 생각을 죽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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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9. 21:36

골목 골목마다 찬바람 불던,  2월달 어느 수요일

야박한 찬바람은 골목에만 불 것이지,

대학에 모두 떨어져 움츠려든 제 목덜미에 더 쌩쌩 불었습니다.


 

어제 모든 발표가 났기에 오늘부터 저는 더 이상 대학과 상관없는 노동학교 1학년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유난히 더 추웠나봅니다.


 

 

정말 추웠습니다.

통을 두개 들고 물을 뜨러 가서

두번째 통에 물을 받을 때 쯤이면

먼저 받은 통에는 벌써 살얼음이 앉아있을 정도로..

물이 얼면 일을 하지 못하죠.

그래서 건설 현장에서는 물이 참 중요합니다.

얼지 않은 물이...

그런데 이게 어쩐 일 입니까

 

 

 

물을 얼지 않게 하려면 물 속에 담궈 놓는

'돼지꼬리'라고 불리는 전열기구를 챙겼어야 했는데

제가 깜빡 잊고 안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를 어쩐다, 이를 어쩐다.

분명 작업반장으로부터 날벼락이 떨어질 텐데,

하나님 저 좀 살려주세요.

 

 

 

그런데 마침 그 때 제 눈에 돼지꼬리 한개가

드럼통에 떡 하니 걸려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오 주여 ! '

 

 

 

제가 입때껏 받았던 기도 응답 중 가장 즉각적인 응답이였습니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아브라함이 산에서 덤불에 걸린 양을 발견했을 때 심정을

아주 조금은 이해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브라함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여 호 와 이 레     : D

 

 

 

그냥 하루 비록 추웠지만 하나님이 주신 돼지꼬리로 일을 하니

왜이렇게 일이 즐겁던지,

노동학교의 타일, 미장, 시멘트 양생 수업이 무사히 끝나고

작업도구를 슬슬 챙긴 후

돼지꼬리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려는 순간,

바로 그 때,

제 어깨에 손을 올리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3 담임 선생님 이후로

저를 그만큼 죽일듯이 쳐다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틀림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제게 말 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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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1. 21:34

장롱 위 먼지 쌓인 종이 상자,

그 상자 안에는 저의 초심이 들어있습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것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어제, 장롱 위 물건을 꺼낼 일이 있어, 

꽁지 발을 딧고 장롱 위를 올려보았습니다.

희뿌엿게 쌓인 먼지가 코를 간질거리는데,

저기 깊숙히 왠 상자가 하나 보였습니다.

 

조심스럽게 꺼내서 뚜껑을 엽니다.

 

'힉!'

 

저는 기겁을 했습니다.

웬걸,

시끄무레한 털레기가 한무더기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놀란 마음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는데,

어머니께서는 옆에 오셔서

놀란 제 얼굴과 뚜껑 열린 상자를 번갈아 보시며 웃으십니다.

 

어머니께 이게 도대체 뭐냐고 여쭤보았더니,

너무도 태연하게

 

'니 털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내...털? 무슨 털...?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그제서야 입을 여시는 어머니,

 

"너 재수시켜달라고 울며 불며 무릎 꿇고 빌 때

 그 때 너가 깎았던 머리털이랑 눈썹이야"

 

하지만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분명히 그 때 내 손으로 다 버렸는데..

 

어머니는 제가 버린 털들을 다시 다 모아서 담아두셨다고 합니다.

행여나 제가 딴 생각 하면 보여주시려고,

보여주시면서 초심을 되새기라고 말씀하시려고 그러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도 참..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손 끝으로 상자 속 털무더기를 들춰내니,

그 때 기억이 조심스레 만져집니다.

 

 

 

2004년, 

춥게만 느껴졌던 2월 초 어느 수요일이였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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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 29. 21:30

저는 서울대와 참 인연이 깊습니다.

 

4년전,

저는 아침마다 지하철 2호선 낙성대 역에 있는 

서울대학교에 등교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등교가 아니라 출근이였습니다.

저와 같이 등교(?)한 학생들이 가방에서 책을 꺼낼 때,

저는 가방에서 연장을 꺼냈습니다.

그 학생들이 책장을 넘길 때,

전 벽돌을 한장 쌓았습니다.

맞습니다.

전 그 당시 학생이 아니라 견습생이였습니다.

당시 건설중이였던 서울대 과학관의 노가다 견습생...

 

입시에서 모두 떨어진 후 제 꿈은 프로 노가다 선수였습니다.

하루 빨리 프로가 되어서,

견습생의 두배가 넘는 일당을 받으며 노가다 제자를 양성하는...

 

전 공부랑 상관없는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저도 그 다음 해에는 

가방에서 연장이 아닌 책을 꺼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또 서울대에 와 있습니다.

이번엔 의대입니다.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등교(?)합니다.

저와 같이 등교한 의대생들이 의료카트를 끌고 실습 갈 때

저는 과일 카트를 끌고 배달을 갑니다.

그들이 주름하나 없는 흰 가운을 입을 때

저는 꼬질 꼬질 한 남방을 입습니다.

맞습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생입니다.

청과류 배달 아르바이트생...

 

상황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아닙니다.

 

지금은 그 때 없던 비젼이 있습니다.

사실 4년 전, 저에겐 비젼이란 단어가 사치였습니다.

그때는 눈 앞에 벽돌을 하나 더 올리는 것이 목표였고,

추운 겨울날 공사할 물이 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 사명이였으며

월급봉투가 제 비젼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써는 제가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있다고 하는 서울대 의대에서

후줄그래한 옷을 입고 하찮아 보이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전 날마다 꿈꾸며 기대하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날마다 기도합니다.

객관적으로 정말 부족해 보입니다.

이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제가 가장 무지하다고 단언 할 수 있지만,

부족한 저이기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저를 누구보다도 기뻐하신다는 사실에

저는 날마다 행복합니다.

 

 

 

 

 

이상 서울대에서 행복한 사람 김민찬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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