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3. 20:26
동물은 즉각적인 보상에 의해 훈련된다.

원숭이는 재주를 넘으면 바나나를 받고,
물개는 박수를 치면 고등어 조각을 받는다.
결국 그렇게 훈련된 동물은 수 많은 사람들의 박수 갈채를 받고
다시 우리로 들어간다.

우리가 생각없이 치는 박수는 사실 조련사에게 보내는 것이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먹기위해 재주를 넘었을 뿐,
그 이상의 이유는 없다.

반드시 보상이 뒤 따르는 훈련..
과연 훈련일까?
그것은 훈련이 아닌 조련이다.

세상은 우리를 조련시킨다.
열심히 땀 흘리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 시기만 지나면 행복할 것이라고 속삭인다.
대학교만 들어가면 행복할 것이라고, 취업만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세상이 우리 눈 앞에 놓아 두는 것은 마치 재주를 넘은 원숭이에게 주는 바나나와 같다.
맛있게 먹은 뒤, 또 다른 바나나를 얻으려면 또 재주를 넘어야 하고
재주를 넘은 뒤 결국 가는 곳은 원숭이 우리속이니..

하지만 그분은 우리를 훈련시킨다.
그분은 우리를 원숭이가 아닌 인간으로 만드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장 적절한 훈련법을 잘 알고 계신다.
힘든 훈련 뒤에는 바나나와 같은 달콤한 보상보다는 믿음이 자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힘들고 지친 상황 속에서 바나나를 붙들고 위로받는 존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신뢰하며 의지하는 존재는 차원이 다르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고 해서 모두 훈련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땀이 흐른 뒤,
눈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빈 주먹만 쥐고 있는 그 순간.
그 순간에 대처하는 자세.
바로 그 모습으로 훈련받는자와 조련받는 자가 판가름 난다.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두 눈을 감을 수 있고
두 주먹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두 손을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훈련이 기도로 연결 될 때, 그때가 바로 훈련의 진정한 결실이 맺어지는 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