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브람스 연주를 들은 뒤, 선생님께서는 작곡가와 악보의 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연주자에게 작곡가는 하늘에 있는 신과도 같은 존재여야 한다.
따라서 작곡가의 뜻이 명기되어 있는 악보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조선일보 2009.11.20일자 [장한나 칼럼] 中
첼리스트 장한나와 그의 스승이자 첼로의 대가 미샤 마이스키와의 대화이다.
이 대화를 보며 난 <역시 대가는 대가구나>하고 생각했다.
마이스키의 말은 한마디로 연주자 자신의 감정을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작곡가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작곡했을까?
왜 다른 음이 아닌 이 음을 썼을까?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 소절은 이렇게 썼을까?
브람스는 어떤 사람이였을까?
지금 내가 내는 이 소리를 브람스는 맘에 들어 할까?
곡에 대한 끊임 없는 의문을 가지고 계속 생각하고 질문하면서 작곡가가 의도했던 본래의 곡을 더듬어 찾아가라는 의미이다.
그렇다. 진정 위대한 연주자는 작곡가가 작곡한 대로 연주해 내는 연주자이다.
탁월한 연주가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자 중요한 진리를 가르쳤던 마이스키,
역시 그는 대가이다.
현대 사회에 아무리 복잡하게 꼬이고 뒤틀렸다고 하지만, 대가들은 정말 중요한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안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결국 '본질'이라는 깔대기를 통과한 뒤,
그 아래 고여있는 한 방울을 보면 결국 단순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톨스토이는 진리는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다고 했다. 오히려 복잡한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하며 복잡한 것을 경계했다.
진리는 한 쪽 면에만 국한 되지 않고 모든 곳에 적용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마이스키는 어느 정도 진리를 이야기 했다고 생각한다.
본질이란 무엇인가? 마이스키가 말했듯이 바로 '그 분의 뜻을 헤아리는 것' 이다.
연주자가 브람스의 곡을 이해 하듯, 오늘을 사는 우리는 하늘의 뜻을 이해해야 한다.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우리도 끊임 없는 의문을 가져야 하고 여쭤봐야 한다.
연주자가 악보를 보고 연주를 하듯, 신앙인은 말씀을 보고 삶을 살아간다.
말씀을 보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
왜 이렇게 쓰셨을까?
왜 다른 말이 아닌 이 말씀을 하셨을까?
무엇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 구절은 이렇게 쓰였을까?
주님은 어떤 분이였을까?
지금 내가 사는 이 삶을 주님은 과연 맘에 들어하실까?
만약,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된다면,
그 때 우리는 비로소 '대가'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의 탁월의 대가가 되기 원한다면 먼저 그 분의 뜻을 헤아리는 연습부터 하자.
응? 민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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