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20. 22:10
새학기가 시작 되기 전이면 나는 연필을 몇 자루 산다.
오늘도 학교 앞에 있는 문구점에 들려 연필을 골랐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캐릭터 연필은 거의 없고 사무용으로 만든 검정색 연필이나
뒤에 주황색 지우개가 달린 노란색 연필이 주로 진열되어 있었다.
저번에도 그랬듯이 나는 세 자루가 하나의 묶음으로 포장되어 있는 검정색 연필을 두 묶음 구입했다.
딱 다섯 자루정도면 내 필통에도 적당히 들어가고, 또 한 학기를 사용하기에도 충분하기 때문에
남는 한 자루 연필은 주로 친구나 주위 사람에게 한 번 써보겠냐고 건내는 편이다.
아직 한번도 깍지 않는 새 연필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제 각기 다르다.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연필을 내미는 손이 민망하지 않도록 '고맙다'며 웃어주는 사람도 있고
'촌스럽다' 혹은 '깎아서 쓰기 귀찮으니 받지 않겠다'고 하는 아주 솔직한 사람도 있다.
촌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깍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
사실 나도 잘 안다. 어쩌면 이런 말을 들을 거라는 것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필을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하다.
깍아야 하기 때문에...
단지 뚜껑을 열면 되는 볼펜이나,
사용하기 전에 뒤 꽁무니를 딸깍딸깍 눌러 즉석에서 심을 뽑아내는 샤프와는 달리
연필을 위해서는 좋든 싫든 칼이나 혹은 열필깍이를 이용해 깍아야만 한다.
이처럼 연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깍는 과정'이라는 준비가 필요하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처음 연필을 깍을 때 그 마음,
그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 연필을 사용한다.
누구나 처음 시작할 때에는 '초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초심'은 말 그대로 처음의 마음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시작할 대에 처음 품었던 마음은 대체로 순수하고 본질에 가까운 마음이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시간에서 멀어질수록 '초심'이라는 마음은 점점 사라진다.
흔히 "초심을 지키다." 혹은 "초심을 잃었다"라는 말을 한다.
그렇다.
초심은 지키지 않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잊게되고 마침내 잃게 된다.
연필을 사용하고 있다면 필통을 열어볼 때 내가 얼마나 초심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뭉퉁한 연필심과 쪼락쪼락한 때가 낀 연필이 보인다면 이는 곧 나의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뭉퉁해 진 것은 비단 연필심 뿐만이 아니라 내 초심이기도 하다.
때가 낀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 초심이다.
깍는다는 것은 준비의 과정이다.
연필을 사용하려면 필연적으로 깍아야 하듯,
마음 역시 새롭게 깍고 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연필을 깍는 시간은 초심을 지키는 시간이다.
순수했던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 나를 깍고 다듬는 시간이다.
옛 선비들은 글을 쓰기 전 먹을 갈았다고한다.
그까짓 먹 하인을 시켜서 갈라고 하면 됐을 것을 왜 굳이 손수 갈았을까?
아마 같은 이치가 아니였을까 생각 해 본다.
매사에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창 밖엔, 간만에 내린 비가 묵었던 눈을 소리 없이 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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