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30. 08:34

불현듯 등이 가렵다. 하지만 손이 닿질 않는다. 인간은 혼자서 등을 긁을 수 없는 부족한 존재이다. 벽에 등을 문지르며 나의 부족함에 대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내 짧은 팔을 탔하진 않는다. 등이 간지러울 때, 자신의 짧은 팔을 탔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가을이 오고 날은 점점 건조해 지고 있다. 간지러운 등을 시원하게 긁어줄‘사랑’이 나는 필요하다. 파리채 뒤 꽁무니로 등을 긁으며 생각한다. 아름다운 사랑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랑이 아닐까?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는 부족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전당포 노인을 죽인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와 매춘부 소냐가 바로 그들이다. 이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 철저히 소외된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 사랑이 피어나고 결국 매춘부 소냐의 사랑은 극단적인 정서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로자를 변화시킨다. 부족함이라고 애둘러서 말했지만, 사실 내가 앞서 말한 부족함은 인간이 겪고 있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 육체적 결핍을 모두 포함한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떤 정서적 정신적 결핍에 시달리는 상태였고, 소냐는 물질적인 부족함으로 인해 결국 몸을 파는 여인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비극적으로 보이는 이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할 때, 이 둘의 사랑을 바라보는 우리는 ‘불쌍하다’가 아닌‘아름답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부족한 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가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오아시스’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여주인공 ‘공주’와 전과자 ‘종두’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육체적으로 부족한‘공주’와 정신적으로 모자란 ‘종두’의  사랑이야기는 보는 내내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종두가 나무 그림자가 무섭다는 공주를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톱질하는 장면을 보면서 난‘아름답다’고 느꼈다. 종두는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또 하나의 모자른 행동을 했다. 하지만, 난 바로 그 종두의 모자란 행동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꼈다.


벌써 오래전부터 성형 열풍이 불고 있다. 남성은 신발에 키높이 깔창을 깔고, 여성의 화장술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모두들 남보다 부족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름대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 역시 이상적인 신장이 되려면 깔창을 두 개는 깔아야 하는 처지이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사랑은 182라는 숫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솔직함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내가 이렇소 이렇게 부족하오 라고 고백할 때, 당신의 부족함을 내가 채워주겠소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본능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이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기 위해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신은 이러한 기적을 만들기 위해 인간을 이렇게 부족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결국 인간은 사랑할 때 가장 완벽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고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