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백지의 도전
2010.01.23- 백련산에 올라갔습니다
마실꾼
2010. 1. 23. 22:13
오후 느즈막하게 수영장에 갔다.
토요일은 강습이 없고 자유수영이라고 해서 자유로운 시간에 자유롭게 가서 수영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자유수영이 아니란다.
자유수영이란 '당신이 자유롭게 개헤엄을 치되 정해진 시간에 와서 해야합니다'라는 그런 의미의 자유수영였다.
센터에서 나와서 집에 갈까 하다가, 여기까지 올라 온 김에 오랫만에 백련산이나 올라가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산이 정말 많이 변했다. 변한건 산 뿐만이 아니였다.
산 아래 다닥다닥 모여있던 바둑판같은 주택들이 싹 밀렸고 그 대신 노란색 크레인 타워가 십여 개정도 들어서 있었다.
정상으로 가는 계단을 한 참 올랐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 크레인 타워는 내 머리 위에 있었다.
웃 옷을 벗어 팔에 걸치며 산 아래를 내려본다.
<저기가 내 친구 인환이네 집이였고, 저기는 재현이네 집이였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마치 깨알처럼 작게 보였는데, 그 깨알같은 사람들이 성냥갑만한 장비에 올라타서
저 넓은 곳을 모두 노랗게 밀어버렸다고 생각하니 뭐랄까, 좀 씁쓸했다.
3번 도로, 4번 도로 하며 플라타너스의 잎 맥처럼 퍼져있던 우리 동네 골목길,
거기서 같이 놀던 친구들, 숨박꼭질 하자며 치켜 세웠던 우리의 엄지 손가락(물론 손톱에 낀 때까지)
터질것 같은 심장소리와 웃음소리,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던 골목길이 없어졌다.
한 번은 저기 강 건너 사는 친구가 놀러와서는 여기도 서울이 맞냐고 하길래
딱히 해줄 말이 없어서 여기 지역 번호가 02라는 것을 보여 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 나는 <그래, 우리 동네는 좀 개발이 되어야 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것 같다.
동산 위에 올라 섰는데, 파란 하늘 보다는 누런 땅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왜일까? 아직 내 귀에는 중장비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것만 같은 그 시절 동심의 소리 때문일까?
자세히 보니 크레인 타워 속 엔지니어 아저씨가 보였다.
열심히 뭔가를 옮기고 있었는데..
내 속에서도 뭔가가 옮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가 옮겨지면 그 무언가가 본래 있던 자리는 다른 것으로 채워지나 혹은 휑하니 빈자리로 남게 되는데,
글쎄,
이 것은 뭔가 다른 걸로 채울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는 기분이 든달까?
땀이 식어 한기를 느낀 나는 조용히 내려와 샤워를 했다.
왼쪽 가슴께에서 유난히도 휑한 기분이 들었다.